게임을 하다가

나는 게임을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간이 나면 좀 하는, 그래, 다 거짓말이고, 시간이 없어도 자주 한다. -_-;; 스타크래프트도 조금 하고 요즘은 포트리스와 한게임을 좀 하는데, 포트리스는 지난 여름방학때 집에 있으면서 좀 자주 해서 쌍별까지 되어보았으나 지금은 만년 은별이고 한게임 테트리스도 뭐 그냥 중수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편이다. (위의 말이 이해가 안되는 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_-;;;)
그런데 게임을 하면서 참 우스운 것은, 계급이 높은 사람일 수록 더 쪼잔하고 치사하게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쪼잔하고 치사하게 게임을 한다는 건, 자기가 이길 수 있는 게임만 하거나 이기기 쉬운 편을 만들거나 혹은 이겼을 때 계급이 가장 많이 오를 수 있는 방법으로 게임을 한다는 것, 혹은 그렇게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다는 것이다. 포트리스에서 메달인 사람일수록 해골과 게임을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그런 것 말이다. 나도 사실 그렇다. 해골이거나 은별일 땐 그냥 질 것 같은 게임도 재밌으면 되는거지 뭐 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데 금별이나 쌍별을 달았을 땐, 왠지 이겨서 이 계급을 지켜야 한다는, 혹은 더 올려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것인가, 뭔가 지킬 것이 있다는 것은.
거대 담론같아 보이지만, 얼마 전 임철우 作 <봄날>을 보면서 작가가 결국 광주에서 끝까지 싸웠던 사람들은 처음 시위를 주도했던 대학생을 비롯한 지식인 층이 아니라 일용직 노동자, 구두닦이, 막노동 하는 사람들 등의 한미디로 ‘별 볼일 없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누차 이야기 한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 지켜야 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 끝까지 남았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제게 소중한 것,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들이 그 것을 더 아름답게 지키기 위해, 혹은 그 소중한 것에게 더욱 아름다운 것을 주기 위해 싸우는 것이, 의당 그래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말이 쉬운 것이다. 가진 것,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은 보수적이기 쉽다. 한 발 뒤로 물러서게 된다. 그 것을 지키기 위해서. 잃지 않기 위해서.
보수적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꼭 자신을 내던져야 고귀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있어야 자신의 그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 해 보면, 자신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 지켜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제 마음이 그렇지 않더라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을 보수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인것 같다.
예전에 월간<우리교육>편집장인 누군가의 글에서 버스가 고장나서 버스 기사가 몇 사람이 내려서 밀어달라고 했을 때, 내린 사람은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서 있던 사람들이라고, 서 있는 사람들은 꼭 내려서 밀어야 겠다는 마음이 아니어도 쉽게 내려서(어쩌면 문 가까이 서 있었기에 떠밀려서) 버스를 밀 수 있지만 앉아 있는 사람은 제 생각이 그렇지 않았어도 제가 앉아 있는 자리를 버리고 일어나 서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내려서 버스를 밀기 위해서는 더 많이 생각해야 하고 더 많이 행동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의 마지막은 아직도 생각이 난다. ‘내가 앉아 있는지 서 있는지 자주 살펴 볼 일입니다.’
결국은 그런 것이다. 앉아 있는 사람보다 서 있는 사람이, 지킬 것이 있는 사람보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끝까지 남았고 끝까지 싸우는. 그것이 사실이고 또 이제까지 그래 왔었다.
200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