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정말 괜찮냐?

너 정말 괜찮냐, 고 많은 사람들이 묻고싶은 것 같다. 솔직하게 대답하면, 음, 그래도 뭐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다.
21일 처음 암이라는 얘기를 들었을때도 그렇게 충격을 받았다거나, 온갖 생각이 들었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부모님에게 뭐라고 말해야 걱정을 덜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곧, 어떻게 말해봤자 걱정은 하실 것이다-_-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서는 시댁에는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으아 모르겠다 짜증난다-_-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유방암에 대한 각종 정보를 입수하면서도, 크게 불안하거나 걱정되지는 않았다. 차분하기까지 했다. 입수한 정보에 따라 나쁨, 중간, 좋음을 나누어 나의 병을 예상 해 보았다. 나쁨은 물론 전이가 된 것이다. 중간은 전이는 되지않았으나 화학요법을 해야하는 것, 좋음은 호르몬 요법 또는 표적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또 생각 해 보면 화학요법을 하는 것과 호르몬요법을 하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 중 최악으로 상정한 상황은, 전이되어 폐암이 발견되는 것이다. 내가 든 암보험에는 조건이 걸려 있었는데, 내가 천식으로 치료받는 상황이어서 기관지와 폐의 암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되어있다. 전이된 암이라면 치료기간도 길어지고 더 많은 돈이 들텐데, 보험금도 못 받으면 어쩌나, 그렇게 돈을 엄청 쓰고 거지가 되고 병은 안 낫고, 그게 제일 무서웠다. 뭐 그렇다고 그런 생각에 빠져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계속 그 걱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어나오지 못하게 묻어두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잘 묻혀있었다.
그렇게 나는 정말 괜찮은 줄 알았는데, 월요일 그러니까 암을 통보받고 첫날 밤, 잠을 못잤다. 아침이 되도록 잠을 못잤고, 화요일 오전에 두세시간 정도 잠깐 잤다. 왜 잠을 못자는 걸까. 난 괜찮은것 같은데. 물론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고, 특히 조그만 일에도 수면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그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계속 잠을 못자게 되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화요일 밤부터 잠을 잘 잤다. 그 주 내내. 평소보다 더 잘 잤다.
그 주 내내 병원을 다니면서 각종 검사를 받았고, 주말에는 촛불집회에도 갔다. 비가 오는 탓에 너무 추워서 수술 전에 감기에 걸릴까봐 금방 들어오긴 했지만. 일요일 밤이 되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월요일 오후에 진료를 보고 검사 결과와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듣기로 했는데 그때까지 초조했다. 마음속에서는 이제 전이가 되어도 좋다, 골전이나 간에 전이되는것 정도는 다 괜찮다, 제발 폐암만은… 이라는 타협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보험금은 중요했다.
대망의 진료시간.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의사아저씨는 전자차트로 내 검사기록을 클릭해서 살펴보다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 뭔가 망했구나. 나중에 함께 갔던 손군에게도 물어보니 마찬가지로 그때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내 검사 결과는 아주 좋았다. 다만 호르몬수용체와 표적치료제에 대한 검사 결과가 나왔어야 하는데 나와있지 않았다. 그래서 한숨을 쉰 것 같았다. 이보시오 의사양반 환자 앞에서 함부로 한숨 쉬지 말라고요.
전이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화학요법이 힘들다고 하는데, 그걸 해서 재발이 안된다면 까짓거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있다. 나이가 어리니 적극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절제를 많이 해야한다면 네네 하십시오 가슴따위 있어봤자 몸무게나 더 많이 나가죠. 예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왼쪽 가슴을 절제하면 오른쪽 가슴을 내밀어라. 다 잘라도 됩니다! 라고 외칠 준비가 되어있다.
아무튼 모든 것을 종합해 볼때, 나는 괜찮다. 심지어 나의 마음속에 뭔가가 억눌려있어서 표출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 해 볼정도로 괜찮다.

“너 정말 괜찮냐?”에 대한 2개의 댓글

  1. 회사 그만두고 전혀 새로운 길에 도전히면서 – 의료계통이라는 민망한 이야기를 던져본다 – 내 주변의 아픔에 민감하게 되었는데. 어쨌든 전이되지 않아 다행이고 건강할 것이고 너니까 이후에도 더 잘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멋대로 던져본다. 사실 오랜만에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이야기를 하러 왔는데 쓸데없이 많은 말을 하게 되어 미안하네. 잘 하겠지만 모쪼록 건강하고 건강하길 바란다. 새해 복 많이 받길. -중고교 동창 수진

    1. 아아 코멘트는 바로 봤었는데, 댓글 달아야지 하고 있다가 이래저래 잊어버렸네. 나는 잘 지내고 있고, 방사선치료가 2/3정도 지나가는 중. 뭐 그다지 힘든 치료과정도 아니지만, 그래서 딱히 뭐 으스댈 것도 없지만 그래도 뭐 그럭저럭 잘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음.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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