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루 (2004. 8월추정 ~ 2020. 9. 9)

일루는 수원의 모교에서 살던 아기고양이였습니다. 동아리방에서 술 먹고 난 다음날 쓰레기통 족발 뼈를 붙들고 있던 작은 고양이를 ‘납치’ 한 것이 2004년 시월의 마지막 날의 일입니다. 동물은 처음이었는데 좋아하지도 않던 고양이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데려온 고양이. 어쩌면 제가 아니었으면 자유롭게 학교에서 살다 갔을지도 모르는 고양이는 그 날 부터 인간의 생활에 맞춰 살아야 했습니다.

건강한 여느 고양이 답게, 깔끔하고 독립적인 성격은 제게 고양이란 이런 생물이라는 하나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비단 일루가 제 첫 고양이라서 그런 것 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일루의 모든 것을 사랑했습니다. 낯을 가리고 소심한 성격도 나를 닮아 그런것이라 좋아했습니다. 독립적인데도 식구는 확실히 알아보고 정을 주는 나의 친구, 일루. 일루가 나이를 먹는 것 마저 저는 좋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내 고양이는 이렇게 건강하게 나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고. 결국 그 나이가 가장 큰 원인이 되어 병이 오고 치료의 실패 요인이 되었지만요. 기네스북에 오를 때 까지 살게 하는게 농반 진반으로 이야기 하던 목표였는데, 부족한 주인이라 목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수원에서, 용인에서, 다시 수원, 경기광주를 거쳐 경남사천, 부산, 경남양산까지. 16년이라는 시간동안 저는 일루를 책임지기 위해 애썼습니다. 다 포기하고 싶었던 20대에도, 새로운 시작에 버거웠던 30대에도 늘 일루와 함께 하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니 내가 일루를 책임 진 것이 아니라 일루가 저를 붙들어 주었던 것이었네요.

마지막 까지 꼿꼿하게 살아온 일루. 아직 정리하지 못한 마음들이 이렇게 넘쳐나는데, 언젠가는 정리될 수 있을까요.

일루를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