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선고를 고지하기

친구들에게

친구 여러분 안녕하세요. 친구라는 말로 다 지칭할 수 없는, 선후배 여러분들, 선생님들, 감히 친구라 칭하는 무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부산에서 새로 만난 친구들도 있고, 수도권에 있는 친구들도 있고 더 먼곳의 친구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소식을 전할까 고민을 해 봤는데, 그냥 SNS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뭐 자랑할 일도 아니고, 소식을 전하지 말까 생각도 해 봤습니다만, 섭섭해 하실 거라 생각도 들었고, 앞으로 당분간 저의 생활이 이 일에 매여 있을 것이므로, SNS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이상은 결국 알리게 될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2016년 11월 21일, 암을 진단 받았습니다. 유방암입니다.
간단히 병을 발견하게 된 과정을 약술하면 이렇습니다. 2016년 10월 22일 이었습니다. 샤워후 왼쪽 유두에서 피가 나와 근처의 여성병원에 방문했습니다만 토요일이라 진료를 받지 못하고 10월 24일 월요일 재방문하여 진료를 받았습니다. 초음파 검사 후 유관이 늘어나 있고 피가 차있는 소견으로 상급병원에 방문하라고 해서 10월 26일 수요일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 유방센터에 방문했습니다. 역시 초음파검사를 받았고, 특별히 다른 소견은 없었으며, 수술을 통해 늘어난 유관을 절제하고 지혈하여 피가 나지 않도록 처치하고 떼어낸 부분은 조직검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11월 10일에 입원하여 11일 수술을 받았고, 12일 퇴원했습니다. 당시의 수술은 실제 수술 시간은 30분정도 소요되는 간단한 수술이었으며, 통증도 크지 않아 금방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큰 일이라 생각하지 않아 가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11월 21일 조직검사 결과를 보기 위해 외래 진료를 받았고, 조직검사결과 암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고지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주에 정확한 진단과 수술을 위한 각종 검사를 받았고, 일주일 뒤인 11월 28일 월요일 오늘 외래 진료를 통해 수술과 앞으로의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원격전이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암의 진행도 매우 초기라 지난번의 수술로 거의 대부분의 병소가 제거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암이 발견되었으므로 오염된 것을 대비하여 주변 조직들을 좀더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합니다. 입원기간은 일주일 남짓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후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며, 화학요법과 호르몬요법중 하나 혹은 두가지를 받아야합니다. 화학요법과 호르몬 요법은 림프절 생검 결과, 호르몬수용체와 표적치료제에 대한 검사 결과에 따라 선택하게 됩니다.
고지 받은 직후 가족 등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알렸습니다만 이제서야 친구 여러분들께 소식을 전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각종 검사를 통해 정확한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막연한 걱정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짧다면 짧은 인생, 그다지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만, 저의 병에 대한 소식을 듣고 기뻐할 지인은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괜한 걱정의 시간은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일주일의 시간 동안 걱정에 파묻혀 지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래도 길었던 한 주였습니다만, 저는 잠 잘 자고, 밥 잘 먹고, 특별히 우울하거나 크게 근심하거나, 패닉에 빠지거나 하지 않고 잘 지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가오는 목요일, 12월 1일 입원하여 12월 2일에 수술이 예정되어있습니다.
건강관리를 잘 하지 못한 대가라면 대가일 것이고, 운이 없었다면 없었던 것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 쓸데 없는 자책은 하고싶지 않습니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을것입니다. 병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다 할것입니다만, 오히려 저는 그 이상으로 병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싶습니다. 병에 걸렸든, 걸리지 않았든, 삶은 계속됩니다. 그것은 저의 병이, 병 이후의 미래를 충분히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예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행여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지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고싶습니다. 그렇게 건강해지고 싶습니다. 친구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소식 전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입니다. 연말연시 모두 건강하세요!

(예상되는 FAQ)
Q 치료는 어디에서 할 계획인지?
A 진단 받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에서 계속 진행할 생각입니다. 부모님께서 본가에서 치료받기를 권유하기도 하셨습니다만, 일단은 여기에 있을 생각입니다. 현재의 자리에서 잘 해내고 싶습니다. 부모님의 권유는, 병원에 대한 신뢰 문제는 아닙니다. 유방암이 희귀한 병도 아니고, 표준치료법이 충분히 확립되어 있으며 여기에서 충분한 치료를 받을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 드렸고 이해 하셨습니다. 다만 부모로서 다 큰 자식이라도 자식이 아픈데 옆에서 돌보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직은 큰 도움 없이 해낼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습니다.

Q 대체의학에 대한 고려는 하고 있는가?
A 저는 기본적으로 현대 과학을 신뢰합니다. 현대 과학에서 의학이 가장 확실하지 않은 분야라는 것을 알고, 인정하고 있으며, 그 점까지 고려해서 현대 의학의 역할과 한계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표준치료법이 충분히 확립된 병입니다. 그 기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생각입니다.

Q 너 돈있냐?
A 우선 암환자에 대한 중증질환 산정특례가 등록되어 건강보험 급여부분의 5%만 부담하면 되는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성인이 된 이후 계속해서 각종 만성 질환으로 치료받은 탓에, 사설의료보험이 일체 없었습니다만, 작년 초에, 수차례 거절당하던 암보험(아버지가 병력이 있으셔서 살다보면 저에게도 결국 필요하게 될 것이라 여겨져 여러차례 시도를 해 왔었습니다)을, 몇가지 조건을 걸고 가입해 두었습니다. 1년 반동안 약 30여만원을 납입받다가, 갑자기 2천만원을 지급하게 된 보험사에 심심한 위로를 전해 주십시오.

Q 병문안을 가고싶은데
A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메르스 이후 병원의 병문안 문화를 바꾸겠다는 시도에 동감하고 있습니다. 전화나 문자, SNS를 이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Q 학교는? 졸업은? 논문은??
A 병을 알게되고 그다지 충격을 받거나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크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가지, 논문에 대해 생각하면 조금 화가 납니다. 물론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 할 것입니다. 그러나 끝날때 까지 끝나지 않았다, 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가족들은 어떤지
A 손군은 워낙 무심한 것이 장점이자 단점인 남자로, 걱정하고 힘들지 않은것은 아니겠으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과 동생은, 물론 제게 말 못하는 고통이 있으실 것이고, 그것에 대해 죄스러운 마음입니다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위암으로 수술을 하셨으나 아주 훌륭하게 치료를 잘 받으시고 벌써 10년째 재발 없이 지내고 계신 선례가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Q 병기가 어떻게 되나?
A 정확한 병기는 수술 이후 진단됩니다. 이후 보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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