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긴 퇴근길

일주일 전 그 날, 일루를 입원시킨 이튿날이었다. 오전에 마침 인간 병원 진료가 있어 출근을 미루고 진료를 보고, 고양이 병원에 가서 일루를 봤다. 일루는 입원실 유리장 너머로 나를 알아보고 냥냥 거렸다. 나는 눈을 맞추고 제발 밥 좀 먹자고 짧게 이야기하고 돌아섰다. 일루가 밥을 먹지 않은지 2주가 되었다. 토혈도 심했다. 먹지 않으면 금방 지방간으로 위독해지는 고양이 특성 상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 입원을 시켰다. 일루의 동그란 눈은 반짝거렸다. 오후에 출근한 회사는 한가했다. 몇시간 만에 일을 마치고 웹툰을 보고 시간을 보내다 퇴근시간. 집에 가서 손군을 만나 다시 고양이 병원에 가서 일루를 보고 올 생각이었다.

학교 앞 좁은 골목길에선 차량 두대가 대치하고 있었고, 나는 대치하고 있는 차들 뒤로 내 차를 가져다 대고 잠시 기다렸다. 퇴근시간이 늦어지면 차가 더 막히는데. 마침 아직 내 뒤로는 다른 차가 붙지 않았고, 골목길에 진입한지도 얼마되지 않아 후진으로 차를 빼서 골목을 우회해서 큰길로 진입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군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일루가 또다시 크게 토혈을 했다며 위 조영술을 해야겠다고 전화가 왔다고 했다. 그렇게 하자고 답하며 집이 아니라 고양이 병원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손군은 타이어가 펑크나서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집이 아니라 고양이 병원으로 가려면 고속도로 출구에서 길이 나뉜다. 고양이 병원은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신도시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고속도로 출구가 언제나 혼잡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나는 음악을 틀었다. 텐마일즈였다.

I’m falling after rain. I’m falling to my eye. 내 시간이 멈춰져.

시간이 멈췄으면 좋았을텐데. 일루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 지난 봄이었다. 일루는 언제부턴가 털 손질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루종일 그루밍을 하던 고양이였다. 언제나 반질반질 윤이 나던 털은 이제 푸석푸석해졌고, 비듬이 주렁주렁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렇게라도 있어주면 좋았다. 복부에 잡히던 유선종양이 빠르게 커져서 종양 제거 수술을 한 건 7월 말이었다. 나이가 열 여섯이라 수술 후 회복을 걱정했는데, 일루는 잘 먹고 잘 회복해 주었다. 아직은 아니라고 그렇게 믿었다. 고질병인 IBD(염증성 장질환)로 인한 구토가 점점 심해져서, 길었던 장마 내내 매일같이 이불 빨래를 해야 했다. 8월말부터 구토의 양상이 달라졌다. 구토에 음식물은 거의 없고, 갈색의 토를 하기 시작했다. 위장관 출혈이 의심됐다. 병원에 방문해 약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지만 일루는 밥을 전혀 먹지 않기 시작했고, 핏덩어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동물이란 원래 아픈 것을 숨기는 것이 본능이라 했다. 길고양이 출신인데다가 원래도 독립적인 성격의 일루는 아프거나 무슨 문제가 있을 때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는 일이 없었다. 하다 못해 비닐봉투를 가지고 놀다가 손잡이에 목이 걸렸을 때에도, 사람에게 다가와 도움을 요청하는 킁킁이나, 사람이 도우러 다가가면 가만히 목을 내밀던 삐약이와는 달리 혼자 파닥파닥거리며 난리를 쳤다. 결국 비닐봉투를 모두 찢어 발기고서야 상황이 종료되곤 했다. 그런 고양이가 지금 아픈 걸 숨길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다.

마지막을 수도 없이 생각했다. 일루는 밥을 먹지 않기 시작하면서 부터 평소에 자주 가지 않던 집안의 구석 구석을 찾아다니며 누워있었다. 그런 일루를 찾아다니는 것이 일이었다. 겁이 많은 일루가 떠날 때 무서워할 것 같아서, 나라도 그 마지막을 꼭 지켜 줘야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 역시도 겁이 많은 인간이라 마지막이 찾아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일루가 보이지 않을 때, 구석을 찾아다니면서 마음 한 구석에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일루를 찾아 눈빛을 확인하고 나면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두려워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두려움이 가진 속성처럼, 두려운 생각은 시도때도 없이 찾아왔다.

앞차의 브레이크등을 따라 전진하다 보니 정체구간을 지나고, 신도시로 진입하는 길목, 손군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했다. 병원에 먼저 도착해서 묻는것이냐고 물어보니 그건 아니라 했다. 병원에 도착하면 들어가기 전에 전화 줘. 왜? 아 그냥 그때 내가 어디쯤 인지 말해주게. 기분이 이상했지만 신호 대기중이고 한 블럭을 더 가면 고양이 병원이 있는 블럭이 나온다고 이야기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일루 잘못되었으면 어떡하지, 또 두려움이 찾아왔지만 생각을 쫓아내려 도리질을 해 댔다. 일루는 내가 45살이 될 때까지 살 거야. 그럼 7년이 지나니까 일루는 23살이 되겠네. 기네스북엔 못 미치지만 그 정도는 살아 야지. 신호등이 바뀌었다.

병원에 도착해 손군이 말한대로 전화를 걸었다. 병원 도착했어. 빨리 들어가봐, 일루 죽은 것 같아. 주차장에서 병원으로 가는 복도에 간호사가 나와있었다. 그녀가 인도하는 대로 처치실로 들어갔다. 일루가 누워있었다. 울음이 나기 시작했다. 겨우 입에서 나온 말은 ‘만져봐도 되나요? ‘ 였다. 일루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그런 날이 오길 바라진 않지만 마지막 인사를 해야한다면 안녕 바다의 노래처럼 고마웠다고, 행복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고작 내가 한 말은 ‘일루야 미안하다’ 였다.

조영술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숨이 넘어갔어요. / 지금 가능성이 얼마나 있나요? / 소위 골든타임이 15분 정도 되는데 이미 지났습니다. / 제가 어떻게 해야하죠? / 여기 앉아서 일루 좀 지켜봐 주시죠. / 편하게 해 줘야 하나요? / 지금 힘들지는 않을겁니다. / …… / 사망했습니다. / 정리… 해 주세요.

약물로 겨우 심장만 뛰고 있던 일루를 쓰다듬는 동안 의사와 나눴던 대화는 저런 것들이었다.

일루의 몸을 남겨두고 처치실을 나섰다. 뒤늦게 손군이 왔다. 나에게 두번째 전화를 한 건, 병원에서 일루 상태가 급변했다는 연락을 받아서 전화는 걸었는데, 운전중에 소식을 전하긴 그래서 얼버무린것이라고 했다. 잠시 후 일루는 동물장례업자의 박스에 담겨 돌아왔다. 삐약이때도 이용했던 이 동네 유일한 그 곳이었다. 나는 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는데, 손군은 예의있게 마지막까지 잘 돌봐주셔서 감사하다고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장례업자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가도 되냐고 물어보고 현재 위치를 알려준 뒤 허락을 받고 출발했다. 못 먹는 일루를 주사기로 억지로 먹이느라 입과 턱 주변의 털이 엉망이었다. 먹였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입에 음식과 약을 묻히는 행위에 불과했다. 깨끗한 것을 좋아했던 일루를 집에 데리고 가 좀 더 닦아주고 싶었다. 그런데 피를 토하다가 떠난지라 시간이 지나면 고여있던 토사물이 나와 더 더럽혀 질까봐 무섭기도 했다. 그런 건 보고싶지 않았다. 바로 화장터로 향했다. 차안에서 상자를 열어 일루를 봤다. 아직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사후경직이 오지 않아 눈꺼풀이 열려 있었다. 죽은 고양이의 눈을 그 때 처음 봤다.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예뻤다.

삼십분을 달려 화장터에 가서, 서류를 작성하고, 몇 가지 절차를 거쳐 일루를 화장시켰다. 한시간이 채 되지 않아 일루는 하얀 뼈만 남았다. 분골을 했다. 장례업자는 일루의 나이를 듣곤 오래 잘 키웠다고 위로했다. 그러나 위로는 되지 않았다. 일루가 건강했을때는 일루가 나이를 먹는 것 까지도 좋았다. 내 고양이가 나와 함께 오래 지내고 있는것이 자랑스러웠다. 아프기 시작하니 나이는 그 자체로 크나 큰 장애였다. 나이때문에 하지 못하는 수술, 부담이 되는 검사가 많았다. 그래서 치료 시기를 놓친것일까. 아니면 결국 암이 위로 퍼졌던걸까. 모든 것을 알 수가 없었다. 이제는 의미도 없었다.

그렇게 퇴근했다. 일루의 유골함과 함께.